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르망디 공국 (문단 편집) === 노르망디 공국의 [[프랑스]] 귀속과 그 이후 === 노르만 왕조가 끊긴 이후 그 뒤를 이은 [[플랜태저넷 왕조]]의 왕들도 노르망디 공국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지만 [[존 왕]] 때 프랑스의 '존엄왕' [[필리프 2세]]의 모략과 공격으로 영토가 나날이 줄어들어 [[1204년]] [[채널 제도]]를 제외하고는 모두 상실해 버렸다. 훗날 [[백년전쟁]] 때 잠시 소유했다가 백년전쟁이 끝난 후에는 채널 제도와 [[칼레]]를 제외하고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. 백년전쟁 이후 잉글랜드가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프랑스 내 영토는 칼레뿐이었는데 이마저도 [[1558년]] [[튜더 왕조]]의 [[메리 1세]] 때 상실함으로써 프랑스 내의 영토를 모두 상실했다. 하지만 당시 노르망디 공국의 영토 중 [[채널 제도]]([[저지 섬]], [[건지 섬]] 등)는 지금도 노르망디 공 [[윌리엄 1세]]의 후손인 [[영국 국왕]] [[찰스 3세]]가 재위하고 있는 왕실의 속령이기 때문에 [[중화민국|영토가 엄청나게 줄어들었을 뿐 노르망디 공국은 채널 제도에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]]는 [[농담]]도 있다. 물론 채널 제도의 건지, 저지 자치정부는 공식적으로는 군주인 찰스 3세를 국왕이라 칭하지만 아직도 채널 제도의 현지 주민들은 노르망디 공(Duke of Normandy)[* 엘리자베스 2세 시절에는 군주가 여성이었으므로 본래는 Duchess가 되어야 하지만 채널 제도의 현지인들은 관례적으로 군주가 여성이라도 Duke라고 부른다는 듯하다.]이라 부른다고 한다. 영국의 전대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[[1967년]] 노르망디 본토를 방문했을 때도 프랑스 국적인 노르망디 본토의 현지 주민들이 공작 만세!(Vive la Duchesse!)라고 외치며 환호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. 한편 [[자코바이트]]파는 [[명예혁명]]을, '[[의회]]가 왕을 자신들 마음대로 갈아치운 [[쿠데타]]'로 간주하여 명예혁명 이후에 즉위한 영국 역대 왕들의 정통성을 모조리 부정하기 때문에 이들의 노르망디 공작 칭호 또한 불법적으로 사용한 칭호로 여기며, 그에 따라 현 자코바이트 왕위 요구자이면서 [[바이에른 왕국]]과 [[그리스 왕국]] [[비텔스바흐 가문|비텔스바흐 왕조]]의 왕위 요구자이기도 한 프란츠 폰 바이에른을 명목상의 노르망디 공작으로 내세우고 있다. 이렇게 프랑스에 귀속된 노르망디 공작위는 [[프랑스 대혁명]] 이후, 프랑스 내에서는 폐지되었다. 이후의 [[역사]]에 대해서는 [[노르망디]] 항목을 참조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